달력

6

« 2025/6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Posted by citizen
2005. 2. 2. 15:11

당신이 보고싶은 날 /이.해.인 글모음2005. 2. 2. 15:11

요즘엔
당신이 더욱 보고 싶습니다
지척인 당신을 두고서도
보지 못한다는 것이

마음 한구석을 멍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운 마음에 견딜 수 없을 때면
이런 상상을 합니다.
'당신이 꿈이었으면...'

당신이 꿈이었으면
꿈 속에 들어가서
당신을 만날 수 있을 텐데
하루 종일 꿈속에 있기 위해
영원히 잠 속에 빠져 들수도 있을텐데

당신은 지금 현실속에 있습니다.
냉혹한 현실은
내 마음에 화살이 되고
저는 과녁이 됩니다.

또 한번의 그리움의 고난이 끝나면
남겨지는 내 삶의 체취들
눈물들.. 그리움들
그리고 사무치는 고독들
조용히 생각하며
내 자신을 달랩니다.

'당신이 꿈이었으면...'


:
Posted by citizen
2005. 2. 1. 06:44

희망고문 글모음2005. 2. 1. 06:44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행동은 같이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럴 수 없다면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행동은 절망을 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둘 사이에 애인으로서는 전혀 희망이 없음을 분명히 인식시켜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작은 희망 하나로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계속 당신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에겐 본능적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은 욕망이 있어서,
자신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도, 그 사람은 자신을 좋아하길 바란다.

술에 취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했어" 라고 전화를 한다든지,
사귈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과 그냥 괜찮다는 이유만으로 데이트를 한다든지,
싫어서 헤어지면서... 이유는 집안이 어려워서, 옛 애인을 못 잊어서,
혹은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말을 한다든지 하는 행동들은
모두 상대방에게 "희망"을 주는 행위들이다.


그러나 이런 행위들은
그 사람 가슴에 안타까움과 속상함, 집착 등을 남겨,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이런 행위를 나는 "희망고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웬만하면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런 고문을 하지 말자.
당신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는
희망을 주지 않음으로써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나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니까.

『 러브에세이 中, 박진영의 "희망고문" 』

:
Posted by citizen
2004. 12. 20. 09:05

괜찮을 줄 알았는데... 글모음2004. 12. 20. 09:05

괜찮을 줄 알았는데...

당신없이 살 수도 있다고...

이젠 당신이 멀리 떠나도 아무렇지 않게 혼자서 잘 지낼 수 있을거라고 나름대로

연습했는데...

이젠 라면 안 먹구 밥도 해먹구 청소도 하고...

혼자서 살 수 있다고 그 사람 없어도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네...

출처:http://blog.nate.com/blueseraph/tb.asp?tb_id=26
:
Posted by citizen
2004. 12. 20. 09:02

겨울이 그려준 하얀 보고픔 / 오광수 글모음2004. 12. 20. 09:02

겨울이 그려준 하얀 보고픔 / 오광수


밤새 소복 소복 하얀 눈이 내려
보고 싶은 당신 모습을 그렸습니다.

당신을 보고 싶은 마음이 큰 줄 알고
온 세상이 다 보도록 크게 그렸습니다.

어제까지 길을 막던 저 언덕은
오뚝한 당신의 코가 되었습니다.

처량해 보이던 마른 풀들도
오늘은 당신의 머리카락입니다.

유난히 큰 까만 눈은 아니어도
수줍어 속눈썹이 보이는 모습입니다.

환하게 미소띤 얼굴은 아니어도
내가 좋아 쳐다보던 그 모습입니다.

조용히 부는 눈바람은
당신이 나를 향한 속삭임 같고

앙상하여 볼품없었던 나무들도
당신의 손에 들린 하얀 꽃송이 같습니다.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아는 하늘은
내 가슴에 새겨져 있는 모습과 같이

간밤에 그렇게 그렸습니다.
하얗게 그리움으로 그렸습니다
:
Posted by citizen
2004. 12. 11. 17:08

[펌] 제목미상 글모음2004. 12. 11. 17:08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랑도 아닌
괜찮은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깊이의 잣대가 필요없는 가슴
넓이의 헤아림이 필요없는 마음
자신을 투명시킬 맑은 눈을 가진
그런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삶이 버거워 휘청거릴때
조용히 어깨를 내어주고
사심없는 마음으로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괜찮은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우울할때 마주앉아
나누는 차 한잔 만으로도 부자가 될수 있고
하늘빛이 우울하여 몹시도 허탈한날
조용한 음악 한곡 마주 들으며
눈처럼 하얀웃음 나눌수 있는
그런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모습 전부를 보여주고 돌아서서
후회라는 단어 떠올리지 않아도 될
괜찮은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상에서 문득 그 모습 떠올려지면
그사람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빙그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


나도 그런 사람에게
참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퍼온곳 : http://blog.dolba.net/k2club/rserver.php?mode=tb&sl=32
:
Posted by citizen
2004. 12. 2. 15:34

[Cartier-Bresson, Henri, 1908.8.22~2004.8.2] 글모음2004. 12. 2. 15:34

카르티에브레송 [Cartier-Bresson, Henri, 1908.8.22~2004.8.2]

요약
프랑스의 사진가.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예술
주요작품 《결정적 순간》(1954) 《유럽인》(1955) 《두 개의 중국》(1955)

본문
라이카(leica) 사진술의 대표적 존재이며, 현대의 포토저널리즘에 큰 영향을 주었다. ‘라이카를 자기 눈의 연장(延長)’으로 사용하는 방법론에 투철하여, 1933년 뉴욕에서 개최한 최초의 개인전에서 주목받은 후로, 스냅사진 미학(美學)의 확립에 힘써왔다. 1954년 첫 사진집 《결정적 순간》은 1931년경부터 촬영하기 시작한 걸작집이며, 이로써 거장의 위치를 굳혔다.

그의 작풍의 특색은, 어떠한 극적 사건의 경우에도 서민의 일상성(日常性)을 정성스럽게 취재하여 역사의 저변에 주목하게 한 점과, 정확한 공간처리로 뒷받침된 순간묘사(瞬間描寫)의 절묘함에 있다. 1947년 R.캐퍼 등과 함께 우수한 보도사진가들을 모아 매그넘포토즈를 창립하였다. 1955년 사진작가로서는 최초로 루브르박물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1975년에는 옥스퍼드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표적 사진집으로는 《유럽인》(1955) 《두 개의 중국》(1955) 《카르티에브레송의 세계》(1969) 등이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
Posted by citizen
2004. 11. 21. 21:56

아토피성 피부염 오해 몇 가지 글모음2004. 11. 21. 21:56

아토피성 피부염 오해 몇 가지
[한국일보]2004/11/21 16:47
▲ 아토피성 피부염은 크면서 저절로 낫는다 음식 알레르기의 영향을 받는 경 우 성장하면서 면역체계가 안정되며 나아질 수 있지만 모든 환자가 그런 것은 아니므 로 막연한 기대를 갖고 방치하면 안 된다.

▲ 병원에 가도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 단기간에 극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환자 들의 섣부른 판단이다. 개인마다 그 원인과 치료법이 다르므로 의사의 지속적인 진료 와 치료가 필요하다.


▲ 땀은 물기라서 피부 보습에 좋다 땀은 증상 악화 요인의 하나다. 소금기 때문에 예민한 환자 피부에 자극을 주며, 지방이 없어 피부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피부를 더욱 건조하게 만든다.


▲ 바닷물이나 소금물에 담그면 낫는다 소금기 있는 바닷물은 환자의 예민한 피부를 자극하며, 특히 염증이나 상처가 있는 경우 2차 감염의 위험도 있으므로 주의 해야 한다.


▲ 식이요법으로 낫는다 음식 알레르기의 영향을 받는 환자라면 어느 정도 효 과가 있으나, 다른 환자들의 경우 어떤 음식을 먹으면 낫는다거나 안 먹으면 낫는다 는 식의 소문은 믿을 수 없다.


▲ 유제품 콩 생선 달걀 등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병원에서 알레르기 검사를 해서 악화 요인으로 밝혀지면 피해야 하지만 그 영양분에 맞는 대체식품을 꼭 챙겨 먹어야 한다. 우유는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필수 영양소를 제공하므로 섭취하는 것이 낫다.


▲ 한약제 등은 생약제이기 때문에 안전하다 생약 및 여러 자연 물질이라고 무조건 안전한 것은 아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 없는 만큼 어떤 복합작용이 일 어날 지 알 수 없어 위험하다.
:
Posted by citizen
2004. 11. 12. 13:26

신앙심을 길러라 글모음2004. 11. 12. 13:26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Mary, mother of Jesus)
예수를 낳으신 마리아는 별로 말이 없으신 분으로 전해진다. 그녀에 대해 별로 알려진 바는 없지만 그녀에
게 바쳐진 성모 마리아 찬가로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이 찬가는 카톨릭 자유 운동을 중심으로 많이 암송되
었지만 중남미 지역에서는 지금까지 금지되어 있다. 다음은 누가복은 1장 46절가지의 전문(대한성서공회 개역
한글판 참조)이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
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 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
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우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
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
Posted by citizen
2004. 11. 12. 13:24

하나 뿐인 꼬마를 위하여.. 글모음2004. 11. 12. 13:24

보라는 꼬마를 사랑한단다..너의 여린 마음을 사랑하고 슬플 때 우는 법을
아는 꼬마의 마음을 사랑한단다.보라는 꼬마의 예쁜 마음을 사랑한단다..
봄비처럼 깨끗하고 여름의 긴 장마 처럼 시원 스런 꼬마를 사랑한단다..
보라는 언제 까지나 꼬마를 잊진 않을 꺼야..
보라는 꼬마의 고독을 사랑한단다..가끔은 보라가 다갈설 수 없을 만큼
고독한 꼬마가 밉기는 하지만 보라는 꼬마를 사랑한단다..
보라는 꼬마의 방황을 사랑한단다.하지만 보라는 꼬마의 방황이 보라를 만남으로써
끝이 나길 바랬단다.이제 꼬마는 방황하지 않는단다..보라가 있기에..
보라는 언제 까지나 꼬마에게 사랑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한단다..
꼬마가 방황하고 슬퍼 할 때는 보라도 방황하고 슬퍼 한단다..
보라에게 꼬마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란다..영원히..
이렇게 비가 내릴 때
보라는 꼬마를 생각하게 된단다..
꼬마는 비를 좋아하지 않지만 거기에 보라는 마음을 담아 보냈단다.
보라는 순순한 마음의 꼬마를 사랑하고 싶단다.보라는 꼬마를 사랑한단다..
꼬마는 가끔 보라의 마음을 아프게 한단다.꼬마는 가끔 보라를 울게 한단다..
하지만 보라는 그런 꼬마의 모든 것 까지 사랑한단다.
보라는 언제 까지나 꼬마를 지켜볼꺼란다.보라는 언제 까지나 꼬마를 사랑할 꺼란다.
보라는 꼬마가 언제나 용기를 잃지 않고 이 험난한 세상을 꿋꿋히 이겨 내길 바란단다.
:
Posted by citizen
2004. 11. 12. 13:24

그대를 향한 슬픔.. 글모음2004. 11. 12. 13:24

오늘밤.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맘 속 깊은 곳에서 메아리 치는 소리를
담을 공간이 더 이상 없기 때문이죠. 누군가를 그리워 한다는 건
너무나 마음 아픈 일이란 걸 알면서도 막연한 기대 한 번 품어 봅니다.
이제나 저제나 꼭 만나고 싶었지만, 아무 말 못하고 헤어지는건,
다만.빈 공간 속의 적막이 너무나도 오래 지속되어 왔던 까닭입니다.
가깝지만 먼 당신의 뒷모습이 아직 내 머리에 선한데,
떠나가는 당신의 맘 또한 더한 나위 없는 슬픔이었으리라..
놀란 얼굴로 당신을 맞이 해야만 했던..어설픈 안부 인사 속에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박혀 있는줄, 그대는 알지 못합니다.
그대를 향한 그리움은 안타까움이 되고 안타까움은 당신을 향한 미움이 되어,
당신 가슴 속에 못 되어박힙니다. 나 또한 바라지 않았건만. 몰라주는 당신에 대한
야속함만 깊어 갈 뿐입니다. 밤은 깊어가고, 그대를 향한 나의 애정 또한
깊어만 가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오직 그대를 향한-슬픔은 내 속에서
쌓여만 갑니다.
:
Posted by citizen
2004. 11. 12. 13:23

이유 글모음2004. 11. 12. 13:23

이별한 순간 부터
눈물이 많아지는 사람은
못다한 사랑의 안타까움 때문이요.
말이 많아지는 사람은
그 만큼 남은 미련 때문이요.
많은 친구를 만나려 하는 사람은
정 줄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요.
혼자만 있으려 하고
가슴아픈지 조차 모르는 사람은
아직도 이별을 실감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Posted by citizen
2004. 11. 12. 13:23

때로는 우리가.. 글모음2004. 11. 12. 13:23

때로는 그대가
불행한 운명을 타고 났으면 합니다.
모자랄 것 없는 그대 곁에서
너무도 작아 보이는 나이기에..
함부로 내 사람이 되길 원할 수 없었고
한 걸음 다가가려 할 때
두 걸음 망설여야 했습니다.

때로는 내가
그대와 동성이기를 바라곤 합니다.
사랑의 시간이 지난후
친구도 어려운 이성 보다는
가끔 힘들겠지만,영원히 지켜봐 줄 수 있는
부담없는 동성이기를 바라곤 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원수 진 인연이었으면 합니다.
서로가 잘 되는 꼴을 못보고
재수 없는 날이나 한 번 마주치는
인연이었으면,생살이 찟어지는 그리움
보다는 차라리 나을 것 같습니다.
:
Posted by citizen
2004. 11. 12. 13:22

바이올린의 눈물 글모음2004. 11. 12. 13:22

늦가을 밤이었다. 거리엔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내린 가을비는 밤이 되어도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았다. 영등포역
지하상가에서 바이올린을 켜고 있던 맹인 악사 김씨는 '선구자'를 막 끝내고 시계를
만져 보았다. 일반인 시계와는 달리 시계 바늘이 밖으로 돌출돼 있는 맹인용 시계는
벌써 밤 열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김씨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 싶어
바이올린을 케이스 속에 집어넣었다. 바구니에 담긴 백원 짜리 동전 몇 개도 호주머니
속에 챙겨 넣고 낡은 비닐 가방 속에 넣어 둔 휴대용 흰 지팡이를 길게 뽑아 들었다.
그러자 그때 지팡이 끝에 한 남자의 발이 걸렸다. 뜻밖에 그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비가 많이 오는 데 어떻게 가실려구 그러세요?"
술 취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주 맑은 20 대 청년의 목소리였다.
목소리만으로도 상당히 신뢰가 가는 사람이었다.
"괜찮습니다. 늘 이렇게 다니는 걸요."
김씨는 그 청년에게 감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하도 출구를 향하여 발을 옮겼다.
그러자 그 청년이 얼른 김씨 앞으로 다가왔다.
"저는 이 상가 건너편 카메라 점에서 일하는 최철호라고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저씨의 바이올린 소리를 듣지요. 아저씨의 열렬한 팬이라고나 할까요. 전 음악을
아주 좋아합니다."
"아, 예에, 그러세요. 고맙습니다."
김씨는 청년이 자기 팬이라는 말에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집이 어디세요? 버스 타고 다니세요? 제가 차 타는 곳까지 모셔다 드리죠."
"아니, 괜찮습니다. 집은 봉천동이지만 늘 다니던 길이라 잘 갈 수 있어요."
"그래도 오늘은 비가 많이 와서, 지금도 빗방울이 제법 굵은 걸요."
어느새 청년은 지하도 계단을 오르는 김씨의 팔을 가볍게 잡아 주고 있었다. 김씨는
그런 청년의 호의를 굳이 뿌리치지는 않았다. 아무리 세상이 메말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자기 같은 사람이 이 정도나마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세상 인심이
그리 나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거리엔 청년의 말대로 정말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청년이 우산을 받쳐 주었으나 얼굴에 와 닿는 빗방울이
제법 굵고 차가왔다. 김씨는 지팡이를 요령껏 내뻗치면서 걸음을 걸었다. 그러나 몇
번이나 행인들과 어깨를 부딪쳤는가 하면, 물웅덩이인 줄도 모르고 발을 내디뎠다.
"그 바이올린 이리 주시죠. 제가 들어 드릴께요."
김씨는 그 청년에게 바이올린을 건네주었다. 가끔 그의 연주 솜씨를 칭찬하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친절을 받아왔던터라 그는 별다른 생각 없이 악기를 넘겨주었다.
그런데 김씨가 버스 정류장 앞에 채 이르지 않았을 때였다.
"아무래도 비가 많이 와서 안 되겠어요. 집에다 전화를 해서 차를 오라고
해야겠어요. 제가 자가용으로 집에까지 모셔다 드리죠. 가만 있자. 공중전화가 어디
있나? 아, 저기 있군요. 이리 오세요. 저기 공중전화 있는 데로 잠깐 같이 가시죠."
김씨는 청년을 따라 공중전화가 있는 데로 갔다. 청년이 집으로 전화를 걸기 위해
공중전화 박스 속으로 들어가자, 김씨도 비를 피하기 위해 그 옆에 있는 전화 박스
속으로 들어갔다. 10여 분이 지났다. 그런데 어딘가 전화를 걸던 청년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최 선생! 최 선생!"
김씨는 전화 박스 칸막이를 손으로 두드리며 청년을 불러 보았다. 그러나 청년의
대답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김씨는 '아차!'하는 생각이 들어 얼른 청년이 들어갔던
전화 박스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러나 청년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김씨는 혹시나
무슨 급한 일로 청년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전화
박스 앞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그러나 청년은 나타나주지 않았다. 온통 비를 맞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영등포역 앞을 몇 차례나 왔다갔다했으나 한번 바이올린 가지고
가 버린 청년은 끝내 나타나 주지 않았다.
그날,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채 자정이 넘어 봉천동 달동네 셋방으로 돌아온
김씨는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다. 같은 맹인인 아내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잠에
곯아떨어진 세 살 박이 아들만이 세상 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그는 이대로 죽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청년을 믿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스러웠다.
복받쳐 오르는 설움에 한번 터진 울음이 그치지 않자, 평소 별로 말이 없던 옆방 주인
남자가 자다가 일어나서 '112신고'를 해주었다. 그러자 새벽 세 시경에 방범대원이
찾아와서 김씨의 진술을 받아 갔다.
세 살 때 백내장을 앓아 시력을 잃어버린 김씨는 서울 맹학교를 졸업한 후, 기타를
치는 떠돌이 유랑 악사로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나이 서른이 넘어 서울에
정착한 후, 녹음기를 틀어 놓고 곡을 외워 가며 혼자 바이올린을 배웠다. 싸구려
하숙집에서 시끄럽다고 야단을 치면 겨울에도 추운 골목에 나가 연습을 하곤 했다.
김씨는 꼬박 2 년 동안 바이올린을 연습한 후에야 거리에 나가 손님들을 불러모을
수가 있었다. 운이 좋은 날이면 1 만 원 이상을 벌 때도 있었다. 4 년 전에는 먹고
싶은 것도 안 먹어 가며 아끼고 아낀 돈으로 체코제 바이올린을 1백만 원이나 주고
샀다. 주로 대중이 좋아하는 가곡이나 클래식 소품, 찬송가 등을 연주했으며, 즐겨
연주하는 곡 중에는 '비목', '아베마리아', 등도 들어 있었다.
바이올린을 잃어버린 후 김씨는 마냥 실의의 나날을 보냈다. 일을 나가고 싶어도
바이올린이 없어 나갈 수가 없었다. 아내는 지하철을 타고 하모니카를 불며 구걸
행각이라도 하자고 했으나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를 찾아온 기자를
붙들고 호소했다.
"잃어버린 저의 바이올린에는 거리의 악사가 흘린 눈물과 한숨이 배어 있습니다.
돈이 필요해서 가져갔다면 돈을 드리겠습니다. 제발 저의 생명인 바이올린만은
돌려주십시오."
신문에는 '거리의 맹인 악사, 바이올린 잃고 한숨만. 데려다 주겠다고 친절
베푼 젊은이, 악기 받아 쥐고는 잠적'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났다.
그러자 기사가 난 다음 날, 악기 제조 회사 사장 한 사람이 산동네까지 그를 찾아와
바이올린 한 대를 선물로 주고 갔다. 그는 김씨의 손을 꼭 잡고 "이건 제가 젊은 날에
쓰던 독일제 활입니다. 부디 용기를 잃지 마시고 열심히 사십시오" 하는 격려의
말까지 하고 돌아갔다. 김씨는 다시 새생명을 얻은 것 같았다. 그는 그 다음 날부터
당장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영등포역 앞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계속해 나갔다.
그 뒤 2 년이 지난 어느 늦가을 밤이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던 김씨의 발
아래에 조용히 바이올린 한 대를 두고 가는 청년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왜 그
청년이 김씨한테 바이올린을 주고 가는지 몰랐으나 김씨만은 알고 있었다.
"바이올린을 돌려 드립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김씨는 바이올린을 켜다가 그 젊은 청년의 맑은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그러나 그는
바구니에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을 때처럼 잠깐 허리를 굽혔을 뿐 여전히
바이올린만을 켜고 있었다.
:
Posted by citizen
2004. 11. 12. 13:21

딸의 어머니 글모음2004. 11. 12. 13:21

가난한 농부의 아내가 하나밖에 없는 딸을 서울로 보냈다. 딸이 서울로 가서
남의집살이라도 해서 돈을 벌겠다고 하자 선뜻 허락하는 말을 했다. 딸이 보내 주는
돈으로 논밭이라도 몇 마지기 마련하고 싶어서였다. 딸은 아름답고 영리했다. 처음에는
이 집 저 집 남의 집을 옮겨 다니며 일을 했으나, 그런 일을 하지 않고도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남들이 천대하는 궂은 일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재빨리 알아차렸다.
그녀는 젊음과 미모로 돈 많은 남자들을 끌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이
남자 저 남자한테로 옮겨 다녔다. 옮겨 다니면 옮겨 다닐수록 그녀에게는 돈과 쾌락이
주어졌다. 사고 싶었던 옷과 보석과, 타고 싶었던 고급 승용차와, 살고 싶었던 집을
마련하는 데에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참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고향에 있는 어머니마저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곧 늙음이 찾아왔다. 그녀의 젊음과 미모만을 사랑하던 남자들은 더 젊고
더 아름다운 다른 여자들을 찾아갔다. 그제서야 그녀는 그 동안 잊고 있던 고향의
어머니가 생각났다. 고향을 떠난 후 단 한번도 어머니를 찾지 않은 일이 후회되었다.
그녀는 서둘러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향했다.
그녀가 고향 마을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깊은 밤이었다. 곧장 집으로 달려가자 잠겨
있어야 할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어머니의 방에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웬일일까. 이렇게 늦은 시각에 어머니는 아직도 주무시지 않는 것일까. 그녀가
조용히 마루로 올라서자 안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순아, 너냐?"
"네, 어머니!"
어머니가 활짝 방문을 열었다. 몰라볼 정도로 늙은 어머니였다. 그녀의 가슴은
무너졌다. 그녀는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어머니, 절 용서하세요."
"용서는 무슨, 이렇게 에미를 잊지 않고 찾아온 것만으로도 고맙다."
"왜 아직도 주무시지 않으셨어요?"
"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밤이 깊은데, 대문이 열려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나는 네가 집을 떠난 후 지금까지 대문을 잠가 본 적이 없다."
"어머니 방에 불이 켜져 있어서 무슨 일이 있는가 했어요."
"지금까지 내 방의 불도 끈 적이 없다. 난 항상 널 기다리고 있었다."
"아, 어머니."
그녀는 한동안 어머니의 가슴에 묻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
Posted by citiz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