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
죽음보다 강한 사랑
citizen
2004. 11. 12. 13:17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 년 7월 말,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제 14
호 감방 사람들은 그들 중에 한 사람의 탈출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몸을 떨었다.
"단 한사람이라도 도망을 치면 같은 감방에 있는 다른 사람 스무 명을 아사형에
처한다"는 수용 소장 프리치의 경고를 떠올리고 그들은 다들 죽음과 같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누구 하나 잠을 청하는 사람이 없었다. 잔혹한 고문에 살아남기를
원하느니 차라리 죽기를 원하는 그들이었지만 아무도 잠을 이룰 수는 없었다.
그들은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아사감방으로 끌려가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숨질 때까지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창자와 핏줄이 말라붙어
짐승처럼 날 뛰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레지스탕스의 영웅들마저도 "내가
뽑히면 어떡하나."하고 어린애처럼 울고 있었다.
수용소 안에서는 아사감방에 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나돌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밤마다 맹수의 부르짖음을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굶주림의
고통보다 목마름의 고통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사형에 처해진 사람들한테서는
인간다운 점을 찾아볼 수가 없어 나치스의 간부들마저도 그들을 무서워한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점호 시간. 수용 소장 프리치는 도망간 사람을 찾지 못하자 14 호 감방
사람 전원을 수용소 마당에 세워 놓았다.
그들은 뜨거운 햇볕 아래 몇 시간이고 서 있었다. 기절해서 쓰러지는 사람들을 열
밖으로 끌어내어 던졌다. 내던져진 사람 위에 또 다른 사람들이 쓰러져 포개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무더기는 점점 커졌다.
오후 3시. 그들에게 30분간의 휴식과 수프를 먹는 일이 허락되었다. 그들은
이승에서의 마지막 식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수프를 먹었다. 그리고 여전히
차려 자세로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 이윽고 저녁 점호 시간. 하루 일과를 마친
포로들이 수용소 마당에 정렬하자 소장 프리치는 교활한 조련사처럼 각 감방별로
보고를 받으면서 이리저리 그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가 14 호 감방수들 앞에
딱 멈추어 서서 갑자기 발작을 하듯 소리를 질렀다.
"도망친 놈이 아직도 안 잡혔다. 이제 너희들 중 열 명이 저 아사감방에 가서
죽어야 한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땐 스무 명을 한꺼번에 보내겠다."
소장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그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서투른 폴란드어로 계속
지껄였다.
"입을 벌려! 혀를 내밀어! 이빨을 보여!"
그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들처럼 벌벌 떨었다. 소장은 그들의 이빨을 자세히
관찰하는 척하면서 그들 사이를 저승 사자처럼 신나게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마침내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
보좌관 팔리치가 즉시 지적된 수형자의 번호를 명부에 기입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인간이 한 개 번호에 불과했다. 지적을 당한 사람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몇 차례 버둥거리는 듯하더니 열 밖으로 빠져나갔다. 물을 끼얹은 듯한
침묵 속에서 포로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너, 너, 너, 너, 그리고 너!"
한 순간에 열 명이 지적되었다. 그것은 바로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불쌍한 내 마누라와 아이들을 이제 다시는 못 보게 되었구나!"
지적을 당한 사람 중 한 사내가 열 밖으로 걸어나오면서 울부짖었다. 지적 당하지
않고 열 가운데 남은 사람들은 아사감방에 가는 일만은 면하게 되었다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 신발을 벗어!"
보좌관이 명령을 내렸다. 사형수들은 맨발로 형장으로 가게 돼 있었으므로 그들은
신고 있던 신을 벗어 던졌다. 부인과 아이들을 더 이상 못 보게 되었다고 울부짖던
사내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좌로 돌앗!"
보좌관이 아사감방이 있는 곳을 향해 다시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좌로 돌았다. 그때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포로 한 사람이 동료들 사이를 헤치고 열
밖으로 걸어 나왔다. 머리가 약간 옆으로 굽은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크고 맑은
눈으로 소장 프리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걸어나왔다.
"정지! 무슨 일이야? 이 폴란드 돼지 새끼야!"
당황한 소장이 고함을 질렀다. 그가 소장 앞에 똑바로 섰다. 아주 침착했다. 입가에
미소까지 띤 것 같았다. 그는 바로 옆 사람한테만 겨우 들릴 만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을 꺼냈다.
"저 사형수 중의 한 사람을 대신해서 제가 죽겠습니다."
"뭐라구?"
소장은 멍하니 놀란 얼굴이었다. 그 어떠한 반대도 허용하지 않는, 자신의 결정을
결코 바꾸어 본 적이 없는, 반항하는 자는 단 한 발의 총성으로 간단히 처치해 벌이던
소장이 갑자기 얼빠진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도대체 왜 그래?
"저는 이미 늙었고,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사람입니다. 살아 있어도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병든 자와 약한 자를 먼저 처치해 버린다'는 나치스의 불문율을
먼저 내세웠다. 혹시 자신의 태도가 소장에게 영웅적으로 비쳐 자신이 원하는 일을
그르치게 될까 봐 몹시 조심하는 태도였다.
"그래, 누굴 대신해서 죽겠다는 거냐?"
"저 사람, 부인과 아이들을 가진 사람 대신입니다."
그는 아까 한없이 울부짖던 프란시스코 가죠프니체크 중사를 가리켰다.
"도대체 너는 누구냐?"
"천주교의 신부입니다."
그의 대답은 짤막하고 엄숙했다. 소장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얼굴을 한없이
젊고 화사해 보였다. 그는 소장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멀리 지평선에 걸려 있는 붉은
저녁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침묵이 흘렀다. 점호 중에 이렇게 오랫동안 침묵이
계속된 적은 없었다. 마침내 쉰 목소리로 소장 프리치가 말했다.
"좋다! 함께 가라!"
소장은 감히 안 된다고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좌관 팔리치가 아사감방행
명단 가운데 번호 하나를 지우고 대신 '16670'번을 적어 넣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앞으로 갓!"
사형수들은 맨발에 셔츠 바람으로 아사감방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그 사람도 마치
양 떼를 모는 목자처럼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 사람의 이름은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이다.
호 감방 사람들은 그들 중에 한 사람의 탈출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몸을 떨었다.
"단 한사람이라도 도망을 치면 같은 감방에 있는 다른 사람 스무 명을 아사형에
처한다"는 수용 소장 프리치의 경고를 떠올리고 그들은 다들 죽음과 같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누구 하나 잠을 청하는 사람이 없었다. 잔혹한 고문에 살아남기를
원하느니 차라리 죽기를 원하는 그들이었지만 아무도 잠을 이룰 수는 없었다.
그들은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아사감방으로 끌려가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숨질 때까지 물 한 모금 먹지 못하고 창자와 핏줄이 말라붙어
짐승처럼 날 뛰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레지스탕스의 영웅들마저도 "내가
뽑히면 어떡하나."하고 어린애처럼 울고 있었다.
수용소 안에서는 아사감방에 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나돌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밤마다 맹수의 부르짖음을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굶주림의
고통보다 목마름의 고통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사형에 처해진 사람들한테서는
인간다운 점을 찾아볼 수가 없어 나치스의 간부들마저도 그들을 무서워한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점호 시간. 수용 소장 프리치는 도망간 사람을 찾지 못하자 14 호 감방
사람 전원을 수용소 마당에 세워 놓았다.
그들은 뜨거운 햇볕 아래 몇 시간이고 서 있었다. 기절해서 쓰러지는 사람들을 열
밖으로 끌어내어 던졌다. 내던져진 사람 위에 또 다른 사람들이 쓰러져 포개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무더기는 점점 커졌다.
오후 3시. 그들에게 30분간의 휴식과 수프를 먹는 일이 허락되었다. 그들은
이승에서의 마지막 식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수프를 먹었다. 그리고 여전히
차려 자세로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 이윽고 저녁 점호 시간. 하루 일과를 마친
포로들이 수용소 마당에 정렬하자 소장 프리치는 교활한 조련사처럼 각 감방별로
보고를 받으면서 이리저리 그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그러다가 14 호 감방수들 앞에
딱 멈추어 서서 갑자기 발작을 하듯 소리를 질렀다.
"도망친 놈이 아직도 안 잡혔다. 이제 너희들 중 열 명이 저 아사감방에 가서
죽어야 한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땐 스무 명을 한꺼번에 보내겠다."
소장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그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서투른 폴란드어로 계속
지껄였다.
"입을 벌려! 혀를 내밀어! 이빨을 보여!"
그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들처럼 벌벌 떨었다. 소장은 그들의 이빨을 자세히
관찰하는 척하면서 그들 사이를 저승 사자처럼 신나게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마침내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
보좌관 팔리치가 즉시 지적된 수형자의 번호를 명부에 기입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인간이 한 개 번호에 불과했다. 지적을 당한 사람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몇 차례 버둥거리는 듯하더니 열 밖으로 빠져나갔다. 물을 끼얹은 듯한
침묵 속에서 포로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너, 너, 너, 너, 그리고 너!"
한 순간에 열 명이 지적되었다. 그것은 바로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불쌍한 내 마누라와 아이들을 이제 다시는 못 보게 되었구나!"
지적을 당한 사람 중 한 사내가 열 밖으로 걸어나오면서 울부짖었다. 지적 당하지
않고 열 가운데 남은 사람들은 아사감방에 가는 일만은 면하게 되었다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 신발을 벗어!"
보좌관이 명령을 내렸다. 사형수들은 맨발로 형장으로 가게 돼 있었으므로 그들은
신고 있던 신을 벗어 던졌다. 부인과 아이들을 더 이상 못 보게 되었다고 울부짖던
사내의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좌로 돌앗!"
보좌관이 아사감방이 있는 곳을 향해 다시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좌로 돌았다. 그때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포로 한 사람이 동료들 사이를 헤치고 열
밖으로 걸어 나왔다. 머리가 약간 옆으로 굽은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크고 맑은
눈으로 소장 프리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걸어나왔다.
"정지! 무슨 일이야? 이 폴란드 돼지 새끼야!"
당황한 소장이 고함을 질렀다. 그가 소장 앞에 똑바로 섰다. 아주 침착했다. 입가에
미소까지 띤 것 같았다. 그는 바로 옆 사람한테만 겨우 들릴 만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을 꺼냈다.
"저 사형수 중의 한 사람을 대신해서 제가 죽겠습니다."
"뭐라구?"
소장은 멍하니 놀란 얼굴이었다. 그 어떠한 반대도 허용하지 않는, 자신의 결정을
결코 바꾸어 본 적이 없는, 반항하는 자는 단 한 발의 총성으로 간단히 처치해 벌이던
소장이 갑자기 얼빠진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도대체 왜 그래?
"저는 이미 늙었고,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사람입니다. 살아 있어도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병든 자와 약한 자를 먼저 처치해 버린다'는 나치스의 불문율을
먼저 내세웠다. 혹시 자신의 태도가 소장에게 영웅적으로 비쳐 자신이 원하는 일을
그르치게 될까 봐 몹시 조심하는 태도였다.
"그래, 누굴 대신해서 죽겠다는 거냐?"
"저 사람, 부인과 아이들을 가진 사람 대신입니다."
그는 아까 한없이 울부짖던 프란시스코 가죠프니체크 중사를 가리켰다.
"도대체 너는 누구냐?"
"천주교의 신부입니다."
그의 대답은 짤막하고 엄숙했다. 소장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얼굴을 한없이
젊고 화사해 보였다. 그는 소장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멀리 지평선에 걸려 있는 붉은
저녁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침묵이 흘렀다. 점호 중에 이렇게 오랫동안 침묵이
계속된 적은 없었다. 마침내 쉰 목소리로 소장 프리치가 말했다.
"좋다! 함께 가라!"
소장은 감히 안 된다고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좌관 팔리치가 아사감방행
명단 가운데 번호 하나를 지우고 대신 '16670'번을 적어 넣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앞으로 갓!"
사형수들은 맨발에 셔츠 바람으로 아사감방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그 사람도 마치
양 떼를 모는 목자처럼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 사람의 이름은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이다.